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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자생물학의 중심원리 Central Dogma of Molecular Biology

분자생물학의 기본 원리에 대해서 알아보자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면 생명과학은 동물의 습성을 살펴보는 학문같지만, 막상 고등학교 생명과학 교과서만 보더라고 이것이 생명과학인지 화학인지 구분하기 어렵다고 느낄 때가 많다. 이는 현대에 들어와서 많은 생명현상이 분자 수준의 미시적 현상으로 환원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 기인한다. 그렇기에 우리가 과거에 관찰한 많은 현상의 원인을 미시세계에서 찾았고, 그렇게 축적된 지식이 쌓인 것이 바로 분자생물학 교과서나 생화학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그런 많은 현상 중에서 유전과 관련된 중요한 원리에 대해 알아보자.


 분자생물학의 중심원리(Central Dogma of Molecular Biology, 센트럴 도그마)유전정보는 핵산에서 다른 핵산이나 단백질로 이동하지, 단백질에서 다른 단백질이나 핵산으로 이동하지 않는다는 원리이다. 이 원리가 나온 배경은 '생명체는 부모와 자식이 왜 닮았는가?'라는 오랜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할 수 있다. 부모와 자식이 닮는 이른바 '유전(遺傳, heredity)'이 생명체의 주요한 특성이라면 그런 유전의 원인이 되는 물질이 생명체에 존재할 것이고, 중심원리는 그 물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답하고 있는 것이다.


 중심원리를 조금 더 자세하게 들어다보면, 유전정보를 전달하는 과정에는 DNA, RNA와 단백질이라는 세 가지 물질이 참여한다. DNA는 복제(複製, replication) 과정을 통해서 DNA를 생성하거나, 전사(轉寫, transcription) 과정을 통해서 RNA를 생성할 수 있다. 그리고 RNA는 번역(飜譯, translation) 과정을 통해서 단백질으 생성한다.[각주:1]


 중심원리는 생명체를 이해하는 한 관점이 반영되어 있다. 생명체에서 변하지 않아야 되는 물질변할 수 있는 것을 감수하는 물질이 있다는 점이다. 생명체가 가진 유전정보는 가능한 변하지 않아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변화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 따라 유전정보를 담은 DNA는 핵에서 안정된 형태를 유지하고, 세포가 분열하는 경우에 동일한 DNA를 만드는 복제 과정을 거치거나 RNA를 전사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안정된 형태를 가지는 것으로 본다. 반면에, DNA에서 만들어진 RNA는 그 자체도 불안정하고 단백질을 만드는 수단으로만 이용되고, 단백질은 그 자체로는 유전정보를 전달하는 기능은 하지 않고 생명현상의 본체로서의 기능만 하는 것으로 본다.


 중심원리가 생명체를 바라보는 관점은 직관적이라서 이해하기 쉬울 뿐만 아니라 많은 유전 현상을 잘 설명해준다. 물론 중심원리가 설명하지 못하는 현상도 중심원리에 질문을 던지는 것을 통해서 접근할 수 있다. 가령, 유전정보가 정말 '가능한 변하지 않아야 하는 것'일까? 물론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연선택을 이겨낸 생명체가 주변 변화가 적은 환경에 적응하였다면 맞겠지만, 아직 선택을 받는 중에 있거나 주변 환경이 자주 변한다면 맞지 않을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반드시 DNA가 유전물질의 매개체가 아닐 수도 있다. 실제 일부 바이러스는 유전정보를 RNA를 통해서 전달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면 이런 바이러스는 역으로 RNA에서 DNA를 만들어 낼 수도 있지 않을까? 실제로 HIV와 같은 일부 바이러스는 역전사(逆轉寫, reverse transcription) 과정을 통해서 RNA로부터 DNA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중심원리는 유전물질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일종의 분업화를 전제하고 있다. 정보를 보관하는 물질, 전달하는 물질과 그 정보가 만들어낸 결과가 따로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태초의 생물부터 과연 이런 물질 사이의 분업화가 이루어졌을까? 또, 지금도 굳이 각 물질이 엄격히 구분되어서 '우리가 생각하는' 자기 일만 할까? 일반적인 생명체에서 DNA는 이중나선 구조를 이루기 때문에 안정한 구조를 이루고 있어서 다른 어떤 기능을 하는 것이 어려워보이지만, RNA는 단일가닥으로 돌아다니기 때문에 어떤 기능을 할 수 있다. 가령, RNA 자체가 어떤 형태로 접히면서 리보스위치(riboswitch)를 만들어서 전사 과정이나 번역 과정을 조절할 수도 있고, miRNA와 같은 짧은 RNA는 다른 단백질의 번역 과정에 관여할 수도 있다. 즉, RNA가 단순히 유전정보를 전달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유전자 발현 과정을 조절할 수도 있다. 즉, 일반적인 조절 기능을 단백질뿐만 아니라 RNA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단순히 중심원리의 개념 자체만 이해한다면 핵산에서 단백질로의 유전정보의 흐름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원리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거시적으로 관찰하던 유전이라는 생명현상을 미시적인 분자 현상으로 이어준 데에 의의가 있다. 물론 이 원리가 모든 것을 설명하지 못하더라도 이 중심원리에서 많은 질문이 파생되었고 더 많은 생명현상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1. 여기서 보제, 전사와 번역은 각각 분자생물학 분야에서 일종의 고유명사로 이용된다. 가령, 전사의 정의 자체가 DNA에서 RNA가 생성되는 과정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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